1996년,
인바디는 체성분분석기라는 정밀하고 측정이 쉬운 제품을 세상에 선보였고,
그것을 보급해 나갔습니다. 의사, 영양사, 스포츠 전문가들이 인바디를 사용했고,
보건소, 학교, 군대, 기업으로 퍼졌습니다.
체성분분석은 학문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인바디의 전과 후로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인바디가 만들어질 당시 체성분분석기 시장은 틈새시장 정도였지만,
이제는 의학적·산업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수천 편의 연구 논문들이 발표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인바디의 여정은 불확실성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세계 최초 제품의 초기는 특허권 침해 소송과 사회적 변수에 직면했지만, 대학원 시절 쌓은 기술적 이해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일본 시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배웠고, 고객과의 신뢰를 기반으로 사업을 이끌어 오며 한 단계 한 단계 성장을 위한 과제를 완수해 왔습니다.
2025년, 저 차기철의 새로운 과제(업무)는 체성분분석기 역시 혈압, 혈당 시장과 같이 하나의 큰 의료산업을 형성하고 확대해 나가며 인바디를 더 큰 글로벌 회사 대열에 당당하게 올려놓는 것입니다. 또한, 구성원들과 함께 우리가 직접 변화를 만들어 내는 과제를 만들고 해내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제조업을 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체성분분석이라는 영역을 개척하며 ‘인류 건강’에 기여하는 큰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일을 할 때 이렇게 의미를 두고 일할 수 있는 인재들과의 미래를 꿈꿉니다.
“흥미를 느끼는 공부나 일이 자신의 ‘주제’가 된다면, 일단 성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디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주제를 결정하는 데는 한 편의 논문이 결정적이었다”** <공대력> 중 발췌
1990년대 초, 차기철 박사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후과정 중 읽게 된 <체성분 분석의 기술>을 다룬 논문을 통해 인생의 주제를 마주했다. 우리 신체의 약 70%는 물이며, 체내 물은 전도도가 높아 전기 저항을 측정하면 물이 많은 사람은 저항이 낮고, 물이 적은 사람은 저항이 높다. 또한, 물과 단백질의 비례 관계를 통해 측정된 저항으로 근육량을 추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체성분분석 시 복잡한 구조의 세포 조직과 일정하지 않은 인체 형상으로부터 오는 오차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논문이 연구되었고, 차기철 박사는 기계공학적 관점에서 ‘신체 부위별로 측정하면 더 나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 지도 교수의 관심을 받아 5천 달러의 연구 지원비를 받았다.
차기철 박사는 6개월 간 연구에 매달렸다. 체성분분석 실험을 진행하며,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했다. 기계공학적 접근을 통해 실험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기존 제품을 능가하는 기술을 구상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점차 정확도를 높여가는 결과를 얻었고, 더 나은 체성분분석기를 만들 가능성을 엿보았다.
여러 회사에 체성분분석기 개발을 제안했으나 반응은 차가웠고, 사업은 곧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적 인식 속에서도 ‘최초’의 제품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 창업이라는 결단이 필요했다.
차기철 박사는 부모님이 주신 전세금 2천만 원 일부로 창업자금을 마련했고, 1995년 1월 1일 삼성동 뒷골목의 좁은 방에서 인바디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마케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차기철 대표는 대형 병원을 찾아가 체성분분석기의 필요성을 열 번 설명하며 문을 두드렸다. 경희대 한방병원이 먼저 관심을 보였고, 비만클리닉 붐에 힘입어 다른 병원에도 진입할 수 있었다.
처음 하나를 팔고, 다음 달엔 두 개, 그 다음엔 세 개로 판매가 늘어났지만, 매달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며 불안 속에 보냈다. 3년이 지나 매출이 안정세를 보였고, 창업 4년 만에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인바디는 해외 시장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일본에 과감히 진출했다.
그러나 1998년, 일본의 체중계 기업으로부터 특허권 침해 소송을 당하며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2년간 이어진 치열한 소송 속에서, 차기철 대표는 대학원 시절부터 쌓아온 논문 연구와 기술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반박 자료를 준비하며 적극 대응해 승소할 수 있었다. 또한, 일본 특허청의 성능 비교 실험에서 인바디 제품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소송을 제기했던 기업조차 결과를 수용하며 인바디의 우수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차기철 대표는 일본 시장의 특성을 깊이 이해했다. 일본은 기술력에서 월등하다고 판단된 기업에 확실히 신뢰를 보내며, 이를 기반으로 시장 내 입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 교훈은 일본 스포츠 센터와의 거래에서도 입증됐다. 150여 차례에 걸친 꼼꼼한 질문에 성실히 응대하며 신뢰를 쌓은 결과, 1년 후 150대의 대량 구매로 이어졌다.
인바디 창업 초기에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차기철은 내향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기술력에 집중하며, 제품에 대해 깊이 몰두한 그는, 기술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금이 아니라 기술과 경영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체성분 분석 기술에 몰두하며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논리적 판단 기준을 바탕으로 경영에 접근했다.
창업 초기 제품 가격을 정할 때도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적정 가격을 책정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품의 품질과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본에서는 국내보다 두 배 가격으로 판매되었고, 미국 스포츠 업계에서도 큰 점유율을 기록했다. LA 레이커스와의 협상에서 얻은 교훈은 큰 홍보 효과를 가져왔다.
인바디의 성공은 시작이 어려웠지만, 끈기와 인내로 이루어진 결과였다.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력과 경영 능력, 그리고 실험적 접근을 통해 얻은 경험이다. 성공의 길은 다양하지만, 지속적인 노력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최초 그리고 최고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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